“그때가 2028년 봄이었죠. 퇴직연금 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하던 날이요.”
김진우(48)는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20년 가까이 중소기업에서 인사노무를 맡아온 그는, 회사 앞 구내식당에서 급히 점심을 때우고 뉴스 속보를 본 순간, 자기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이제 게임이 바뀌겠구나…”
“사장님, 이직 전에 퇴직연금 확인해주실 수 있나요?”
2029년 9월.
퇴직 후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에 들떴던 신입사원 이지우(24)는 입사한 지 겨우 3개월째였지만, 어느 날 퇴직연금 어플을 열고 깜짝 놀랐다.
“벌써 제 계좌에 적립금이 있더라고요. 작지만 뿌듯했어요.”
그녀가 다닌 스타트업은 30인 미만의 소기업이었다. 과거라면 이런 회사에서 퇴직연금은커녕 퇴직금도 ‘희망사항’일 뿐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의무화가 끝난 지금, 어떤 규모의 회사라도 퇴직연금을 가입하지 않으면 과태료 대상이다.
퇴직금 일시금? 이제는 연금으로만 받는다
2028년 12월 31일.
마지막 일시금 퇴직금이 지급되던 날, 한 중견기업 퇴직자들의 단체채팅방은 ‘추억팔이’로 북적였다.
“이제 퇴직금 한 방에 받는 시대 끝났네.”
“요즘 세대는 연금 받는 게 낫지. 우린 부동산 샀지만.”
이제 퇴직 시 받을 수 있는 퇴직금은 법적으로 모두 연금 전환이 기본이다. 다만, 연금 개시 전까지 일정 기간 이상 가입하지 않은 경우만 일부 예외가 인정된다.
대기업은 순응, 중소기업은 휘청… 제도 도입 그 후
퇴직연금 의무화의 4단계까지 완료된 2030년 기준, 도입 현황은 다음과 같다.
기업 규모 퇴직연금 도입률 정부 지원 여부
300인 이상 | 100% | 없음 |
100~299인 | 97.3% | 없음 |
30~99인 | 84.6% | 조건부 있음 |
5~29인 | 60.2% | 최대 3년간 10% |
5인 미만 | 43.9% | 최대 3년간 10% |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에선 도입 이후 정부 보조가 끝나자 폐업하는 사례도 일부 나타났다.
“임금 외 추가 부담이 감당이 안 돼요.”
서울 봉천동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던 박호준(62) 씨는 결국 가게를 접었다.
퇴직연금, 벤처로 흐르다… 수익률보다 안정성은?
정부는 퇴직연금의 새로운 투자처를 개방했다.
비상장 벤처기업 투자까지 허용되면서 연금운용 수익률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연도 평균 연금 수익률 벤처 투자 비율
2027 | 2.8% | 0% |
2029 | 4.3% | 7.6% |
2031 | 6.1% | 14.2% |
그러나 안정성 우려도 커졌다.
“수익률도 좋지만, 퇴직연금은 노후자금이에요. 투기는 위험해요.”
은퇴자 윤석만(65)은 퇴직연금 계좌의 벤처주식 하락에 불안해했다.
3개월 일하고 퇴직금 받는 시대, 어떤 풍경일까
편의점, 카페, 학원가 등 단기 근로가 많은 산업에선 변화가 컸다.
“예전에는 3개월 채우고 바로 나가는 알바생도 드물었는데, 요즘은 정해진 듯 퇴직연금 챙기고 나가요.”
홍대 인근 한 카페 운영자 이보람(38)은 속이 탄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장기근속 유도 인센티브’를 추가 도입했다. 연속 2년 이상 근무 시 기업에게 퇴직연금 부담의 5%를 환급해주는 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 가입 유도에 나선 정부
정부는 단기 인출을 줄이기 위해 ‘세제 인센티브 확대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정비했다.
가입기간 세액공제 비율 연금수령 가능 연령
1~5년 | 5% | 65세 |
5~10년 | 8% | 62세 |
10~20년 | 10% | 60세 |
20년 이상 | 15% | 58세 |
청년층에게는 추가로 ‘청년 퇴직연금 적립 세액공제’ 제도가 도입되어 29세 이하 근로자에 한해 연 60만원 한도 내 추가 공제가 가능하다.
연금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소득불평등?
퇴직연금 제도 개편이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고연봉 근로자일수록 더 많은 적립금을, 더 낮은 세금으로, 더 안정적인 투자처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노동계는 “퇴직연금마저 새로운 양극화 도구가 되고 있다”며 ‘퇴직연금 분배형 계좌’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2032년, 여야는 이를 두고 또 다른 격론을 예고하고 있다.